2008/04/27 02:33
오늘 블로거뉴스 스포츠 베스트에 올라온 '구름관중, 부산팬들이 사직구장을 찾는 이유는?'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글을 쓰신분 나름대로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생각해서 쓰신글인듯 한데 그 글 밑에 달린 댓글들처럼 본질을 잘못알고 계신듯 하더군요.
좀더 많은 조사를 하고 쓰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글에서 잘못생각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댓글에서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그래서 롯데를 진정 사랑하는 골수팬 분들께는 송구스럽지만 저도 롯데를 사랑하는 한사람의 갈매기로서 왜 사직구장이 꽉차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번 써볼까 합니다.
1. 부산은 프로야구 이전부터 야구의 인기가 높았다.
기본적으로 부산은 예전부터 야구의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것은 고교야구와 관련된 부분이라기 보다는 일본야구의 영향과 6.25전쟁에서 안전할수 있었던 지리적인 이유로 인해 스포츠를 할수있는 여건이 더 좋았던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이북출신인 김응룡 감독님도 월남해서 부산상고에서 야구를 하셨었죠.
아마도 야구가 국민스포츠처럼 인기가 있는 일본과 가깝다는 점은 분명 큰 영향이 있었을것입니다.
부산에서는 일본의 방송이 잡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접할기회가 많았을테고 그래서 더 쉽게 야구와 친숙해질수있는 기회가 많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제 어린시절을 기억해보면 부산에 사시는 이모댁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고시엔 중계를 듣고 계시는 이모부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모든 부산사람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접할수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는건 분명한듯 합니다.
2. 야구명문고가 많은 도시.
제가 이글을 쓰게 된 원글의 내용을 보면 고교야구의 열기가 롯데팬으로 흡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것보다는 전국적으로 고교야구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부산에 명문고가 많았었죠. 부산, 대구, 광주 같은 도시에도 야구명문이 많았고 그래서 특히 그런 도시들에서 더욱 인기가 많았다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고교야구의 인기를 대학, 실업야구.. 이후에 프로야구까지 끌고 올라가는데는 이만수, 장효조, 김봉연, 김성한같은 대단한 선수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대충 생각나는 선수 몇명만 적었으니 누가 빠졌다는건 좀 봐주세요..-_-; 같은 연배가 아닌것도 알아요..;;) 이런선수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었던 도시는 전체적으로 인기가 다 높았죠.
그리고 부산에는 '최동원'이 있었습니다.
3.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부산의 야구열기와 '최동원'이라는 대 투수는 빼놓고 이야기 할수 없습니다.
그 이전에도 야구명문고가 많은 부산에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최동원'이라는 이름 석자가 부산사람들에게 가지는 힘은 그야말로 엄청났습니다.
이후 '선동렬'이라는 '국보'로까지 불리게 될 광주 출신의 괴물투수가 나오게 되지만 그 이전에 '최동원'이라는 투수가 부산에 있었습니다. 누가 낫다 더 좋은투수다 라는걸 이야기 하려는것이 아니라 '최동원'이라는 투수는 부산사람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야구선수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한적이 있지만 '부산의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릴정도의 투수였으니까요
'최동원'은 부산야구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선수였고 그가 날리던 시절 야구의 인기가 더욱 상승했다는것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면서 84년 롯데를 우승까지 시키죠..
크지 않은 체구에 금테안경을 끼고 거만한표정으로 갓잡아올린 물고기가 펄떡거리는듯한 다이나믹한 투구폼에서 뿜어져나오는 강속구는 부산사람들을 사로잡았고 지금도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4.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 외의 다른도시도 야구열기는 높았다.
원글을 쓰신 기자분이 출발부터 방향을 잘못 잡으신것이 부산외에도 전국적으로 야구열기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는걸 간과한 부분입니다.
박찬호의 인기가 폭발하는 동시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지던 시점까지는 부산뿐 아니라 프로야구를 하는 왠만한 도시는 다 야구열기가 높았습니다.
광주나 대구같은 도시는 당시에 절대로 부산에 뒤진다고 말할수 없었을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초강력의 포스를 뽐내었고 엄청난 스타플레이어를 줄줄이 배출했던 해태가 있는 광주는 말할것도 없었고 (잠실도 해태경기가 있는날은 거의 해태 홈이라고 할정도의 분위기였습니다.) 대구도 비록 지금은 예전보다 관중이 줄긴했지만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도시인만큼 할머니까지 경기장에 와서 야구를 즐긴다고 할 정도로 야구도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리고 요즘 SK가 다시 재건에 힘쓰고 있는 인천도 프로야구 초기 성적이 가장 나빴던 삼미의 연고지였지만 도원구장에 엄청난 포스의 관중들로 꽉꽉 들어찼었죠.
(SK는 그때의 그 골수팬들을 다시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글의 시작은 왜 사직구장에 관중이 많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직구장은 관중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를 찾아야 했던겁니다.
분명 다른구장도 관중이 많던시절이 있었으니까요.
5. 유퉁이라는 응원단장.
오늘 야구중계중에 허구연위원도 잠시 언급한 내용이지만 부산, 그리고 롯데팬이 관중이 줄지않고 유지하고 더 발전시킬수있는 배경에는 유퉁씨가 분명히 일정부분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전에도 물론 관중이 많긴했지만 지금처럼 롯데만의 독특한 응원문화가 꽃핀 모습는 아니었지요.
야구장=술(소주)이 너무 당연하게 통용이 되던 시절이었고 경기가 좀 험악해지면 불붙은 쓰레기통과 사발면이 날아다니고 성난 관중은 그물을 타고 올라가는등 그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부산만이 아니라 야구열기가 높은 도시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별로 새로울것이 없는 광경이었죠.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 관중 개개인의 전투력은 그때가 더 좋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던 시절이 지나가면서 롯데의 응원석에는 유퉁이라는 응원단장이 등장했습니다. 롯데라는 구단의 직원도 아니고 그냥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응원단장이었죠.
워낙에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고 재미있게 응원을 주도하면서 나중에 방송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롯데응원을 이끌어 나가고 또 한데 뭉치게 만드는 역할을 해줬습니다.
그때쯤 부터 롯데만의 응원문화가 생기고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게 아닐까싶습니다.
(유퉁씨 말고도 살살이라 불리던 분도 계셨다는데 그시점에 전 군생활을 할때라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야구장에서 '부산갈매기'를 부르기 시작한게 유퉁씨라는 내용이 있던데사실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동열 감독의 얼마전 인터뷰를 봐도 '예전에도 관중은 많고 열기는 높았지만 그때는 다들 술마시고 놀았지 지금처럼 한목소리로 응원하는건 아니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응원문화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팬들중에 보던 신문을 흔들면서 응원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것이 지금의 신문지응원으로 발전하고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된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문지 응원의 시발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6. 독특한 응원문화.
그렇게 독특한 응원문화를 가지게 된 롯데팬과 사직구장은 안그래도 높은 열기에다가 야구팬이 아니었던 사람도 한번와서 그 분위기를 느끼고 나면 빠지게 되는 마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건 직접 그속에서 그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한사람은 알수 없을겁니다.
3만의 관중이 한목소리로 만들어내는 응원의 함성은 그야말로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의 위력이 있습니다.
현재의 응원단장도 열심히 하고 잘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직의 응원은 응원단장이 시켜서라던가 억지로 하는게 아닌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응원이 많고 응원단장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어있는 형태입니다.
박자를 맞추어주고 단합을 이끌어 내기위해 순서를 정해주는 정도의 역할이랄까요?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흥이나서 이루어지는 응원이 많기 때문에 한번 달아오르기 시작하면 끝도없이 불타오르는 그 지방사람들의 기질답게 대단한 열기를 발산하는 모습이 보여지죠.
그것이 만약에 인위적으로 롯데 구단에서 만들어낸 응원이었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열기는 만들어낼수 없었을겁니다.
그런 응원문화와 분위기가 팬이 아니었던 사람까지 끌어 들이는 그런 힘을 만들어 낼수 있었던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알고있는 또 주위의 선배 롯데팬형님들께 들었던 한도내에서 써본 사직에 구름관중이 모이는 이유는 위와 같습니다.
저의 짧은 기억력을 동원해서 후다닥 쓴 글이다보니 많은 부분 빠진 내용도 있을듯하고 부족하거나 잘못알고 있는 부분도 많을것 같습니다.
지금의 응원문화는 팀의 성적에 매달린다기 보다는 자신이 자식처럼 동생처럼 생각하는 부산의 자이언츠 선수들을 언제나 바라보는 심정이 담긴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만해도 30대 중반을 넘긴 결혼도 안한 총각주제에 롯데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던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자식보는 기분처럼 흐뭇함을 느끼거든요. 단순히 성적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다른 스포츠를 볼때 잘하는걸 보고 느끼는 감정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 표현방법이 바닷가 사람 기질답게 예전에는 상당히 거칠게 표현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이런 독특한 모습으로까지 변화되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롯데가 성적이 좋아지면서 구름관중이 모이는 이유를 근래의 내용에서만 찾으려는 글을 몇번 보았습니다만. 부산팬들의 열기나 그 극성스러움은 놀게 없어서라던가 99년 플레이오프 사건이라던가 오랜 성적부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골수 부산팬들을 붙잡고 한번 물어보세요 왜 롯데를 좋아하느냐고....이러이러한 이유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있을까요? 그냥입니다. 그냥 원래 롯데를 좋아하게 태어났고 부모님도 롯데 할아버지도 롯데 그러니까 나도 롯데다 라는 대답이 아마도 대다수일겁니다.
그렇게 이유가 없기 때문에 기사를 쓰기 위해서 이유를 찾으려면 엉뚱한 내용이 나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는 왜 롯데팬들은 저리 열광하는가 에 대한 기사는 '그냥'이라고 두글자만 쓰는게 가장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dc야갤에서는 이런말도 하더군요
'롯데 팬이 되는이유? 모태신앙임'
이라고요 ;;;
예 모태신앙이라는 말도 맞다고 생각해요.
저부터도 어렸을때부터 당연하다시피 야구를 접했고 롯데를 좋아하는데 대해서 어떤 의심도 해본적이 없으니까요.
그냥 당연히 좋아하는거였죠..ㅎㅎ
야구를 가진 도시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어릴적 아버지 아니면 삼촌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야구장이란곳을 가게되고
누구나 비슷하게 가지는 경험입니다. 유독 부산이 관중동원력이 강한이유라.
전 근데 일본의 영향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이 기사를 통해 일본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솔직히 연관성을 모르겠습니다.
나이대가 윗 세대랑은 맞지 않아서 인지.
부산이 가지는 지역적인 특성인 바다라는 매개체와, 영화 친구에서 볼 수 있듯이 남자에 대한 생각. 근성에 대한 생각. 등 부산적인 성격이 야구를 통해 표출이 되는 것일지도요.
인구도 무시 못할 듯 합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부산 인구가 500만 가까이 되질 않나요...??? 아마 단일 팀으로서는 최대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연고지 이겠죠. 다른 광역시가 100만을 간신히 넘기고 서울은 현재 3개의 팀이 같이 쓰고. 그렇게 볼 수도 있구요.
그리고 부산에 마땅히 놀거리가 없는것도 이유가 될 듯 합니다. 서울처럼 공연문화가 발달하는 것도 아니고, 맨날 술만 마시고 놀 수 있는것도 아니고,
뭐...이래저래 주저리주저리...ㅎㅎ 사직 작년 시즌마지막경기 가서
신나게 놀다온 기억에. 언제다시 가보나,...ㅎㅎ
ㅎㅎ 마지막으로. 지금의 20대는 최동원보단 박정태 세대라.
우승보다. 99년 플레이 오프와. 오늘은 이겨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세대라....ㅎㅎ 근성. 바다. 부산...그리고 롯데. ㅎㅎ
원래 글을 보고 왔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실로 무섭네요.
서울에 비하면 부산의 문화공간과 공연문화, 놀거리 문화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데. ..ㅎㅎ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원 기사도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분석을 한건데. 사람들의 반응은 기자의 자질까지 들먹이고. ㅎㅎ 어렵네요. ^^ 암튼
오늘은 제발 이기길 바라면서. 롯데 화이팅.
둠님도 아자.
일본야구의 영향이라는 부분은 롯데팬이 많은 이유라기보다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부산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쓴거였어요..^^;
원글에 댓글다신분들이 많이 거칠게 쓰시긴 하셨지만 저도 마땅한 놀거리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ㅎㅎ
예전에는 다른구장도 구름관중이 모이던 시절이 있었고 부산도 그랬는데 그중에 부산만 그게 유지되는건 야구를 당연하다시피 좋아하는것과 야구장의 흥겹고 자발적인 응원이 지금의 젊은세대들에게까지 어필이 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99년 이전에도 롯데팬들 극성스러운건 뭐 말할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좀더 많은사람들이 함께 즐길수있는쪽으로 문화가 변해가는것 같아 보기좋습니다.
원글을 쓰신분도 좋은의도로 쓰신건 알겠는데 부산분들의 야구사랑 롯데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조사가 좀 부족했던게 아닐까 싶네요..ㅎㅎ
부산의인구는 360만 정도입니다.
롯데 부산 360만명
삼성 대구 250만명
SK 인천 250만명
기아 광주 130만명
한화 대전 130만명
모태신앙에 한표. 저는 여자고 30대 중반인데요,아빠가 틀어놓은 야구중계 보고 자랐으니 뭐 안 좋아하기 힘들었죠. 근데...유퉁은 80년대 부터 활약했어요. 살살이도 그렇고...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쯤 그러니까 90년대 초에, 유퉁은 연예계로 진출하고 살살이가 응원하고 있었거던요...그리고 그때부터 단체응원은 시작된 거 같아요. 파도타기야 뭐 고전이고, 라이터 응원도 했었거던요. 들리는 소문에는 알바하던 대학생이 시작됐다고 하던데... ㅎㅎ 들어갈 때 가방 검사도 했었어요. 사람들이 소주 숨겨들어가는 일이 많아서...
저하고 연령대가 비슷하시네요..^^
당연하게 자라면서 야구를 접한 케이스가 참 많은듯 합니다. 유퉁씨가 등장한 시점이나 살살이라는 응원단장이 활약한 시점에 대해서는 제가 좀 잘못알고 있었네요.
그때는 이미 서울에서 살때라 유퉁씨를 보는것도 잠실구장 롯데경기에서였거든요...ㅎㅎ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매번 눈팅만 하다가 글 처음 남겨 보네요~ㅋ
좀전에 사직갔다가 매진에 팅겨서 집까지 날라 왔습니다.ㅎㅎ
날씨가 그렇게 좋은편이 아닌데도 사람이 북적북적하네요 역시 갈매기들 최곱니다.ㅋㅋ
저도 롯데팬들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은 대물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주 어릴땐 아버지 손잡고 처음 야구장갔다가 중고등학교땐 친구들하고 어울려 가게되고 나중엔 여자친구 손잡고 입장하게 되는게 정석적인 코스가 아닐까 하는 ㅋㅋㅋ
사직의 특성상 제대로된 응원전에 휩쓸리게 되면 다음에 꼭 다시가고 싶은 마약같은 중독성으로 인해 야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여자분들도 남친손잡고 많이 가는경우가 많죠(물론 원래부터 야구장 자주가시는분도 많구요^^)
제 여자친구 집은 야구장엘 가족단위로 자주 간다더군요(음식 해가지고 갑니다.^^;; 튀김이랑 찌짐같은거..또 사직가서 닭한마리사고 삼다수통에 소주 세팅도 해가더군요..^^;;)
오늘처럼 대패한 경기에도 자리를 지켜준 우리 갈매기들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만큼의 충성도를 보여준다는건 대물림이 아니고서는 유지하기 힘든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저도 나중에 제 자녀를 데리고 또 대물림 해야지요..^^
공포의 외인구단의 난 너에게,,라는 노래가 생각 나요....
님의 댓글을 보고 잠시 고민했습니다..;;
왜 그노래가 생각나셨을까요..^^
가사도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제 머리로는...ㅜ.ㅜ
이유를 찾으면 알려주세요..댓글보고 혼자 그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네요..;;
마저마저요. 저두 어릴때 울 아부지 손 잡고 시끄러운 속에 어리둥절 앉아있던 게 야구장에 대한 첫 기억이에요. 그냥 좋아요. 롯데 그룹은 싫어도 자이언츠는 좋아요. ㅋㅋ 어릴때 울 아부지가 떼놓고 혼자 야구보러 가면 서러워서 엉엉 울고 그랬는데 말예요. 왜 그랬는지는 미스테리~~ ^^;;
어렸을때부터 성질이 못됐었구만 안수미양..-_-
역시 골수팬이 되기위해서는 대를 이어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끈이 있어야하는듯..ㅎㅎ
KBO는 관리감독하라. 프로야구 감독과 코치는 개나소도 하는게 아닌 전문가가 해야한다.그많은팬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기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그래도 일본에서 야구를 했다던 OB,의 김영떡 감독,최고의투수 박철순을 무리하게 등판시켜 선수생명을 끊으며 우승,84년 쌍무식꾼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야할 무지무식한 방신같은 강빙처리란 개놈은 최동원이란 국보아니 최고의투수를 혹사에 혹사를 시키며 우승을하고 최동원을 죽여버렸는데 그런놈이 아직도 야구곙 붙어있는게 한심스럽거던요. 부산,경남팬 여러분 좃데구장에 최동원의 흉상을 건립합시다.팬으로부터 자발적인 성금을 받아.이런건좃대구단에서 먼저해야 되는데.팬 여러분 호응해주세요. 좀있다 계좌번호 넣을께요.최동원.
그전에 먼저 롯데로 모시고 와야지요..ㅎㅎ
지금 한화에 있는게 영 마음이 아픕니다.
얼른얼른 롯데로 데리고와서 차기 롯데 감독으로 제리감독님밑에서 공부할수있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있지요!!
8개 구단 중 원년 팀 이름 그대로인 팀은 롯데와 삼성 뿐입니다.
롯데의 원년 역사도 무시 못하죠.
아마 매각 되어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면 또 다르게 될지도..
그렇게 매각에 매각을 통한 팬을 잃어 버리는 구단도 많으니까요.
그러고보니 그점도 있네요..ㅎㅎ
올드유니폼데이를 해도 제대로 할수있는 두팀 롯데와 삼성
그것도 정말 큰듯합니다.
유퉁전에 응원하던 84년도에 롯데를 우승시킨 꼬마애가한명 있었죠
이주일 흉내를내며 우익수 뒤쪽에서 응원하던 꼬마가 생각나네요
한국시리즈3차전때는 삼성응원단쪽에 가서 응원하던 생각이 나네요
지금은 나이가 많이돠었겟죠
아 그런사람도 있었군요..ㅎㅎㅎ
그때 제가 국민학교5학년때라서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저보다 약간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대일것 같네요.^^
제가 국민학교다닐때는 구덕운동장에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동시에 진행하던 때가 몇번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따라 축구볼때가 많았었는데 관중석상단에 올라 야구장 전광판을 수시로 확인하신 어르신분들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대우나 롯데 둘다 이기면 "아버지 오락기하나 사주세요?" 하면 바로 콜이였던 기억이...
롯데라는 이름이 어릴적 관람하던 야구장..부모세대부터 내려오는 정이 아닐까 합니다. 그게 부산에 많은 중,고교 야구부 있는 학교를 거치면서 롯데 선수들이 중,고교 선배나 후배가 되면서 더욱더 정이 깊어지는..그런거..같습니다.
예 아무래도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게 정말 큰것 같습니다.
전 어렸을때 경기장 갔던 기억은 5살때 마산 살았었는데 아버지 따라서 마산 공설운동장 갔던 기억이 처음이네요
가기 싫다는거 아버지께서 조립식 장난감 하나 쥐어주고 끌고가서 아버지는 경기보시고 전 옆에서 장난감 만들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ㅎㅎㅎ
집이 진해 인지라 사직까지 가기가 힘들어 집에서 TV혹은 인터넷으로 봅니다.. (아 물론 마산에서 하면 안빠지고 보러 갑니다 ^^) TV보고 있으면 옆에 아들녀석(6살)이 와서 앉아요. 그리곤 노래를 따라 부르지요..롯데 롯데롯데 롯데~!........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오.....모태 신앙 맞습니다 ^^이러면서 자란아이가 커서 다른팀을 응원 할리도 없고 ;;; 다른 스포츠를 좋아 할리도 없지 안겠어요 ^^? 아들놈이 운동능력이 뛰어나서 운동쪽으로 간다면 보따리 싸들고 말릴텐데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 도시락 싸들고 다닐꺼 같네요 ;.....
정말 이쁘겠네요..^^
저도 빨리 결혼해서 자녀에게 골수롯데의 정기를 심어줘야 하는데..ㅎㅎㅎ
부럽습니다..^^;
송승준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좀 흐트러진 것 같습디다. 오른팔이 어깨 너머 앞으로 낼 때 불안정해요. 무게 중심이 너무 뒤로 쏠린 듯 하기도 하고. 공을 좀 더 앞으로 끌고 나와야 하는데, 그것도 안되고... 정신력 없는 기술력도 무의미하겠지만, 기술력없이 정신력으로 경기하는 것도 어렵죠.
기본적으로 구속이 잘 나오지 않는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여집니다. 구속이 잘 나오지 않으니 코너워크를 의식하면서 직구제구가 안되고 그러면서 릴리스 포인트가지 흐트러지는 악영향이 생긴게 아닐까 싶네요.
그냥 제가 기술적인부분은 언급하는건 가급적 자제하려고 하는편이라 정신적인부분을 좀더 강조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쯤 최동원연세대학시절 부산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어머니(의외죠 아버지가 아니라 )따라서 야구를 보러 간적이 있었습니다.이후 어머니는 실업롯데 야구시합도 보러 다닙니다.지금도 기억나는게 어머니가 최동원 나오는 경기보고와서 최동원이 견제구 연속으로 25개 던졌다 관중의 엄청난 야유에도 굴하지않고 역시 배짱은 최동원이라는 믿지못할 전설같은 이야기를 해준게 기억납니다. 그때는 외야에는 관중석이 없었고 팬스만 달랑 있었습니다. 그때 게임을 졌었는데 최동원이- 부산에서는 연세대가 졌다고 안하죠 최동원이 졌다고하지요 ^^- .만원관중의 열기가 엄청났던걸로 기억합니다.집이 대신동 쪽이라 자주 야구장을 갔었는데 고교야구만해도 장난아니었죠.이후 중학교때 프로야구가 생겨 주1회는 꼭 야구장을 가고 고등학교때도 학교 마치면 7회부터 야구 공짜라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야구보러 간기억이 납니다.학교가 야구장 근처에 있었습니다.ㅎㅎ.
제가 초창기 부터 야구를 보면서 변해가는 야구장의 응원은 초기에는 자율적이었습니다.응원단장이 따로없고 기분나는데로 한잔 먹고 응원을 주도했는데 주로 337박수였습니다.사실 그때가 더 재미있었습니다.응원보러 야구장 갈정도였으니까요.야구가 큰점수차로 지면 " 자 놉시다"하면 서 노래방화 됩니다.지금도 야구장 가보면 그때 역사가 면면히 내려오는걸 느낌니다,그리고 초창기 구덕야구장이 워낙 작다보니 과장좀해서 3루쪽에서 누가 큰소리로 농담하면 1루측에서 웃을 정도였습니다.그러니 야구장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이후 사직으로 야구장을 옮기고 초기에는 여전히 그런분위기 입니다.자율적인 응원.그러다가 유퉁과 살살이가 거의 동시에 나타납니다.유퉁과 살살이는 같은 극단출신으로 압니다.
유퉁이 약간오바스러운 응원으로 분위기를 잡으면 살살이가 조직적인 응원을 유도합니다.이후 유퉁이 연예계로가고 지금 분위기는 거의 살살이가 잡았다고해도 되지요.지금 응원단상에 예전에는 아무나 올라와서 응원을 했습니다.그때 살살이가 롯데에서 지원안해준다고 경기끝나면 모자를 돌리면 관중들이 돈을 모아주곤했습니다.이후 치어리더가 동원되고 응원단장을 롯데에서 투입하면서 살살이는 3루쪽으로 밀렸지요 .사실 저는 정말 서운했습니다 초창기처럼 아무나 응원할수 있어서 자발적으로 응원하고 웃고 즐기던 기억이 더좋은데요 .지금도 야구장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건 그때 전통이 이어져오는거겠죠.
최동원에 관해 한마디 정리하자면 구덕운동장에 최동원이 완투승하고 나서 몸을 풀고 있을때 관중석에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롯데의 최동원이 아니라 최동원의 롯데야!"라고 외쳤습니다.최동원은 모자를 벗고 인사를 꾸벅했습니다.이 한마디로 정리되죠.
좋은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말씀 감사드리구요.
지금의 응원문화가 아무래도 요즘의 야구장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의 야구장도 확실히 그립긴합니다.
최동원의 롯데...정말 납득이 가는 이야기네요..^^
저두 초딩때 아부지랑 같이 구덕운동장에서 시작했죠, 그땐 고교랑 프로같이 한구장(구덕)에서 돌아가면서 했죠...화랑대기 교교대회 하면 롯데 홈게임은 마산에서 하구...
80년대중반에 어떤게임에서 최동원완투-승리투수랑 더이상 나올선수가 없어 9횐가 타자로도 나와서 중견수를 넘기는 결승2루타를 쳤던게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끔직한 구덕의 콘크리트계단에서 발광하던 초딩이 나였죠...김일권선수의 파울볼도 주웠던 기억이...흐
그뒤 99년도 플레이오프는 누가 뭐래도 롯데를 응원하던 팬이면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봤을태고...호세,박정태,마해영,임수혁,김민재,공필성,박석진,기론등등이 그때의 역사를 만들었죠...정말 다들 잘했죠...
재미있는건 그전에 가장 롯데팬이 싫어하던 팀이 지역감정의 영향으로 해태였지만 이후 삼성으로 바뀌게 되었죠.
고등학교를 당시 사직고교로 배정...또 이넘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수가...ㅋㅋㅋ 야간경기하면 학교운동장이 휜해서 축구 할 수 있을정도였고
학교 꼭대기층에선 망원경으로 사직구장 전광판도 체크핼수있었죠.
경기길어지면 야자마차고 직행,8회공짜입장해서 응원하기도 했는데. 롯데 지고있는데 선동열 불펜에서 몸풀고 있으면 쓰벌~하면서 그냥 나오던 기억도...
보통 야자 10시마치고 버스타러 내려오면 때마침 야구보고 나오는 관중땜에 버스못타서 집에 맨날 걸어가고, 사람들 이기면 기분좋다고 한잔 지면 열받아서 한잔....... 운동장앞 길가 파라솔 주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죠...그땐 관중문화란 좀 과격해서 지면 불지르고, 그물망타고 올라가고, 구단 버스막고..흐미
유퉁, 살살이 이후에는 90년대 중반에는 KIA자동차 영업사원 하시던분이 혼자 고분분투 응원단장격이었는데 유니품뒤에 쓰여진 이름이 기억이 나지않네요....그분 참 생긴건 샌님이었는데 호각하나로 열심히 했죠.
"신은 공평하다 하느님은 부산에 최고의 팬과 최악의 야구팀을 주셨다"
그렇게 삽질해도 버릴수없는게 롯데인가봅니다. 한마디로 "애증"
그래도 올해는 가을에 야구 할수 있을것같아 넘 기분좋네요..
작년까지 고향 부산과 직장인 잠실에서 그래도 자주 응원했었는데,
올핸 외국에 거주중이라.....
올해는 게임을 못봐 너무 아쉽네요.
영국에는 NAVER 동영상도 버퍼가 심해서...에궁
어쨋든 올해는 기대만땅입니다.
롯데 화이팅~~
멋진 경험담 감사합니다..^^
지금 영국에 계시는군요.
올해 들어서 외국에서도 열심히 롯데를 응원해주시는분들께 많이 감동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주세요..ㅎㅎ
ㅎㅎㅎ 모태신앙.. 전 88올림픽때 부터 야구 봤던 기억이 나네요.. 욕과 야구를 같이 배웠죠 ㅋㅋㅋ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전부 야구 좋아하셔서 주말에 야구 틀어 놓으면 같이 앉아서 보는데 어찌나 욕을 하시던지 ㅋㅋㅋ 그립네요 그시절..